JIKS 국어과교사 오현주(현 교사)
이름은 대상과 무관하게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Cirebon이라는 도시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머릿속에서 요란스러운 매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찌르-찌르-찌르 울리는 매미의 울음소리. 한 여름의 찌든 더위를 식히기 위해 커다란 나무 밑으로 가면 시원스럽게 울어 대는 매미 소리에 정말 여름의 한 가운데 있구나 하는 느낌이 불러일으켜지던......
알고 보니 인도네시아 지명에는 Ci_ 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이 꽤 있었다. 찌까랑, 찌보다스, 찌아뜨르...... 잘은 모르지만 듣기에 Ci_ 가 붙은 이름은 물과 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 같다. 어쨌든 Cirebon은 바다가 있고 강이 있는 항구와 가까운 도시라고 하는데 그것보다도 먼저 떠오른 것은 한때 강렬한 울음을 토하고 왕성하게 번성하고 이제 그 흔적을 안고 또 많은 시간을 들여 다음을 준비하는 매미의 일생과 같은 도시는 아닐까 하면서 문화 탐방의 발길을 내딛었다.
못다 한 새벽잠을 버스 안에서 보충하면서 한참을 가다보니 Cirebon 가까이에 온 것 같았다. 어디선가 바다의 내음이 닫혀진 창틈으로 스며들어 오고 있었다. 가는 눈을 뜨고 어슴프레 보이는 풍경 속에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보는 듯한 개펄이 펼쳐 있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해변에 있는 식당에서 생강차를 마시며 바다 내음을 폐부로 끌어들였다. 바다는 조용하고 물에는 염분이 많은 듯 흙빛과 소금기가 녹아 있었다. 그러나 바다가 바다다운 것은 그 속에 생명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는 바다로부터 기원했다고 하지 않는가. 개펄 여기저기에 나 있는 게들이 파놓은 흙 구멍을 보면서 미안하지만 꼬챙이를 넣어 깊이를 확인해 보았다. 가늘고 긴 꼬챙이가 쑥 들어가는데 그 깊이가 생각보다 깊었다. 내가 밟고 서 있는 이 흙바닥이 바다 생물들의 삶의 터전이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개펄에서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캐내고 있는 부녀자와 아이들이 보이고...... 바람에 신나게 펄럭이고 있는 해변의 깃발을 보면서 왜 바닷가에는 깃발이 꽂혀 있는지에 대해 우리끼리 열띤 논쟁을 벌였다. 바람의 속도와 방향을 알기 위해서야. 정박하는 배에 표지가 되기 위해서야. 우리끼리의 설전이 오가는데 식당에서 일하는 아이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요즘 행사에 쓰려고 만든 깃발들을 모아서 꽂아 놓은 거라고 했다. 허무한 논쟁의 끝에서 우리는 잠시 맥이 빠졌지만 문득 유치환의 시 '깃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그렇구나 ! 바다는 영원히 인간에게 방랑을 자극하고 생명력을 뒤흔드는 것이구나. 그래서 바다에는 떠나고자 하는 갈망을 담은 깃발이 달려 있고, 그러나 현실에
발붙일 수밖에 없는 푯대가 서 있고 그 속에서 바람에 몸부림치는 영혼들이 매달려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Cirebon에서 우리는 여러 왕궁들을 돌아보았다. 자바섬 중에서 동쪽에 있는 항구 중에 가장 큰 항구 도시이고 17세기부터 중국인들이 많이 이주해 와서 살고 있으며 무역이 발달하고 또 무역과 함께 문화 교류가 활발한 도시였다고 한다. 그래서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Cirebon에는 강력한 Galuh 왕국이 가까이 있었고 많은 왕조의 유물들이 남아 있다. 왕궁들은 지금은 쇠락해서 그 터와 오래된 나무들이 남아 지나간 역사의 화려함을 짐작하게 해 준다. 왕궁은 조경에 상당히 신경을 쓴 흔적들이 남아서 산호 화석을 가져다 달걀흰자를 접착제로 사용하여 정원석으로 삼았는데 특이한 재질감과 섬세함이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 경주의 포석정처럼 물길을 만들어 놓은 정원의 구조도 있었다. 왕궁의 박물관에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통치를 위해서 강력한 군사력이 필요했던지 많은 투구와 갑옷, 정교한 칼과 창 등의 무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평화시에 왕족이 타던 수레가 있었는데 화려한 장식이 있었고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특히 힌두교의 신과 이슬람 문화에 영향을 받은 문양, 가루다의 날개, 용의 머리가 장식되어 있어서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조화롭게 실현한 개방성에 놀랐다.
이슬람 종교 지도자 Gunung Jati의 묘지를 찾아 갔는데 무덤 사이에서 한가롭게 낮잠을 자고 있는 오늘을 살고 있는 주민들을 보면서 삶과 죽음이 무엇이 다른 것인가, 긴 시간의 흐름 속에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우리의 존재감은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Cirebon의 왕궁을 배회하면서 타레가의 연주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기타 선율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고즈넉한 오후의 쓸쓸함과 길게 그림자 비추고 있는 늘어진 나무의 중얼거림, 이슬람 문화와 힌두 문화가 뒤섞인 이국적인 분위기. 아마도 이런 것들이 스페인의 이슬람 궁전 LA ALHAMBRA를 연상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나간 영화는 뒤에 남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아련함과 허무함과 쓸쓸함을 되새기게 하는 것인가 보다. Cirebon의 왕궁에서 맞이한 저녁은 무희들의 섬세한 손놀림과 옛날식 차력 공연을 보면서 저렇게 감상적인 분위기에 젖어가며 깊어갔다.
밤이 되면서 Kuningan으로 이동한 우리들은 뜨거운 온천으로 몸을 덥히고 밤새도록 대나무의 속삭임을 들으면서 이곳이 인도네시아인지 아니면 한국 남도 땅의 대나무 정원 소쇄원에 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천상에서 들리는 자연의 오케스트라를 듣는 것인지 비처럼, 음악처럼 바람과 대나무 소리에 젖어 잠자리를 뒤척거렸다.
둘째 날 Kuningan은 역마살에 휘둘려 떠돌아다니는 우리의 영혼에 많은 말을 걸어 왔다. 아득한 선사의 유적이 우리를 잡아끄는 Cipari Ancient Site, 해발 650m 지점에서 발굴된 고대 거석 문명의 흔적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농부의 쟁기 끝에 이끌려 세상에 나오게 된 유물들로는 석관, 고인돌, 돌도끼, 농기구, 장식물들로 당시의 생활을 짐작하게 해 주는 것들로 인도네시아의 오랜 역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다시 찾아간 곳은 높은 산 속에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가톨릭 신자들의 마을이었다. 마리아 동굴로 불리는 동굴이 있는 작은 성당. 깨끗한 마을의 이미지와 함께 경건하고 안온함을 느끼게 하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 성당의 내부와 역사에 대한 설명을 성당의 수사로부터 들었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예수의 고난을 형상화 한 십자가의 길. 가톨릭에서 예수 수난시기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예수의 삶을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14처(예수가 골고다에서 십자가형을 당하고 돌아가시는 과정을 재현한 14단계)를 산의 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어 놓은 곳에 이르렀다. 성당에 다니시는 분들이 앞장을 서서 기도를 하고 우리는 뒤에서 천천히 그 과정을 되새겼다. 종교가 있건 없건 간에 고난 속에서도 인류를 생각하는 예수님의 뜨거운 비애와 고통의 단말마가 희미하게나마 느껴지는 듯했다.
경건한 순례의 길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Cirebon에서 만난 Taman Arum Sunyaragi를
"물의 궁전"이라고 불렀다. Sultan과 왕비들을 위해 만든 물웅덩이와 명상의 방은 지금은 희미한 물기만 남아 있지만 우리는 돌 틈 사이사이로 흘러나와 화려하게 살아 숨 쉬었을 그때를 생각하면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웠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었다. 돌 틈 사이사이에 물이 흐르고 커튼처럼 흐르는 물줄기 사이에서 조용히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을 아름다운 왕비와 왕을 상상해 보라. 돌로 만든 탑들 사이에 사람 하나 들어갈 만한 자리를 만들어 놓고 머리를 어지럽히는 번뇌를 정화하기 위해 명상하는 장면은 인도에서 건너온 힌두 승려의 모습이기도 중국에서 건너온 도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우리가 명명한 "물의 궁전"에 대해서 계속 떠올렸다. 환상처럼 신비처럼 자리하고 있는 Tanam Arum Sunyaragi는 그야말로 Cirebon이라는 도시의 이미지와 가장 어울리는 곳이었던 것 같다. 자카르타로 달려오는 버스 안에서의 시간은 Cirebon과 Kuningan을 배회하고 있는 우리의 영혼을 다시 불러들이는 시간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Cirebon 궁전의 추억을 말하고 가슴 속에 흐르는 감흥을 옛 시인의 시조 속에 담아 실어보기도 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꿈처럼 허망한 인생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시간을 살아가야 하지 않는가. 문화탐방반에 나오신 어떤 어머니께서 구수하게 원숙한 삶의 경지를 품고 있는 노래를 들려주시기도 하고 낭만적인 청년이 부르는 이국의 노래 속에서 우리는 한발씩 현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자카르타는 역시 오늘을 사는 우리를 강렬하게 끌어 들이고 있었다. 빛나는 도시의 반짝임 속으로 우리는 또 다시 걸어 들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