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KS 12학년 정예지
인도네시아에 산지 어느덧 19년이 되어가지만, 그 동안 인니 문화를 접한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학교에서 CA 활동으로 인니문화반에 가입하여 10회 정도 문화탐방을 했지만 항상 아쉬웠다. 그 외에는 부끄럽게도 바쁘다, 귀찮다는 핑계로 인니 문화를 배우는 일에 소홀했다. 그동안의 태도를 반성하며, 지난 방학 때 사공경 선생님을 따라 따만미니 행사에 참여했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지 않던가. 인도네시아에 사는 이상 인도네시아 문화를 알고 이해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12월 19일, 저녁 7시쯤 문화탐방 팀은 따만미니 앞에서 모였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 온 따만미니는 많이 변해있었다. 어두워서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언뜻 보기에도 훨씬 더 깨끗해진 것 같았다. 차를 타고 10분 가량 이동해 행사장 Nusa Tenggara Barat 관에 도착했다. 행사장 안에는 천막으로 된 상점들이 바틱, 진주반지, 나무로 된 수공품 등을 팔고 있었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이현주 선생님과 함께 한국인의 흥정 정신을 발휘하여 마음에 드는 기념품을 싸게 살 수 있었다. 그 다음은 저녁 식사를 위해 이동했다. 문화탐방 팀은 한국 대표로 초청을 받아 온 것이어서 실내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당 안에는 일본,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VIP 손님들도 많이 있어 줄 서는 것조차도 모두 조심스레 행동하게 됐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니 어느덧 야외무대에서 오프닝이 시작되고 있었다. 곱게 분장한 꼬마 아이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면서 행사의 개막을 알렸다. 어린이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티 없는 귀여움은 정말 각국 그 어디를 가도 똑같은 것 같다. 어린이들을 보면서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반목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다시 천진난만한 장난꾸러기들로 돌아온 어린 연주자, 댄서들에게 모든 관람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 날 열린 행사는 특히 바다가 아름다운 7주- Nusa Tenggara Barat, Nusa Tenggara Timur, Maluku, Maluku Utara, Sulawesi Utara, Kepulauan Riau, Bangka Belitung 지역들이 각 지역의 문화를 알리는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축제였다. 먼저 각 지역 대표들이 나와 홍보영상과 함께 간단한 지역 설명을 하였다. 섬나라답게 모든 지역이 아름다운 바다를 갖추고 있었지만 자연 환경이 서로 달라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NTT에는 3가지 색을 가진 바다와 세계 최대의 도마뱀인 코모도가 있고, Bangka Belitung의 해변은 아시아의 최고로 손꼽힌다고 한다. 해변이라고 다 같은 해변이 아니었다. 석양 무렵 배에서 생선을 끌어내리는 어부들의 실루엣은 오랫동안 나를 사색하게 만들었다. 하얀 모래밭과 인천대교 같은 멋진 다리도 있었다. 엄청난 수와 종류의 물고기를 가진 Maluku 는 인도네시아 어획량의 15%를 차지한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풍부한 해양 자원과 아름다운 바다. 역사의 아픔으로 바다색은 저리도 깊어진 것인가.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다양한 인도네시아의 자원에 감탄하며 첫 무대인 NTB지역의 뚜답 댄스를 관람했다.
뚜답 댄스는 우리나라의 태권도와 비슷한 동작의 안무들로 짜인 춤이었다. 엷은 파랑 색의 호두까기 인형 옷을 입은 댄서들이 경쾌한 음악에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있으니 저절로 흥겨워졌다. 가장 관심 있게 보았던 무대는 NTB 지역의 여자들이 검은 색 드레스를 입고 추었던 춤이다. 신비로운 음악과 매혹적인 동작은 보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는 듯 했다. Maluku 지역은 대체로 복장의 무늬와 장식이 거의 비슷해서 춤보다는 다양한 악기로 연주되는 독특한 소리가 더 두드러졌다. 이어서 여가수 3명이 잔잔하고 부드러운 지역 노래를 선보였는데, 지역만의 노래가 따로 있을 만큼 Maluku 사람들의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히 높다는 것을 느꼈다. Bangka Belitung 은 색다르게 이슬람교의 기도를 노래로 불렀다. 이슬람 신자들의 기도문을 노래로 불렀는데, 평소 확성기를 타고 울려 퍼지던 기도 소리와는 확실히 다르게 호소력과 열정이 넘쳤다. 이 지역의 춤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음악과 복장들이 모두 다 중국풍이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문화를 본받아 자기들만의 색으로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런 것이 사회문화 시간에 배운 문화 발전인가 보다. 문화 발전은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며 인류의 미래를 지켜준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앞날에 무지개가 펼쳐지리라는 예감으로 나는 들뜬 기분이 되었다.
이 밖에도, 그 날 내가 알게 된 인도네시아 문화의 특색과 미(美)는 일일이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많다. 다른 사람들도 조금만 관심을 갖고 주변을 둘러보면, 후진국이라는 강박관념과 편견 속에 가려진 인도네시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삶이 허무하게 느껴진다면 무지개를 연상시키는 7주의 바다를 보며 사색에 잠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인도네시아의 강렬한 태양과 역사의 아픔까지 날려주는 바닷바람은 우리에게 위안을 줄 것이다.
비 온 뒤에 떠오르는 무지개는 일곱 색깔이 모여서 그토록 아름답고 눈부신 것일까? 오늘은 인도네시아 일곱 지역들이 모여 각각의 색으로 눈부시게 빛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