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스 보물의 집, 그리고 시공간 여행
-324회 문화탐방기
박범진(UGM 박사과정, 제 9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 우수상 수상)
인간 세상에서 살던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마법 학교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이런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루마자와(Rumah Jawa) 투어는 시작부터 끝까지 호그와트 마법 학교에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2016년에 인도네시아로 와서 욕야카르타 가자마다 대학교에서의 박사학위 과정을 시작한 지 2년차가 되던 해, 한인니문화연구원에서 주최한 '제 9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에 공모하였다.
인도네시아 정부 장학금을 받으며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졸업 후 인도네시아 창업을 계획 중인 이야기가 독특했는지 한인기업상이라는 멋진 상을 주셨고, 이를 계기로 한인니문화연구원과 좋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욕야카르타에서 대학원의 일상을 이어가던 중, KOTRA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자카르타로 다시 입성했다. 5일 동안의 자카르타 창업 교육이 끝나고 발리 창업 교육으로 넘어가기 직전, 한인니문화연구원에서 귀한 장소로 문화탐방을 떠난다는 소식을 받았다. 목적지는 사공경 원장님께서 예전부터 알고 있던 희귀한 장소이며 평소에는 그룹이 아니면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고 입장료도 비싼 편이라고 했다.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고는 방문이 제한되는 곳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마침 몇 년에 한번 정도 있는 특별한 오픈하우스라 20명의 탐방 회원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발리 행 비행기를 5시간 앞두고 아침부터 서둘러 숙소를 나와 자카르타 남쪽에 위치한 루마 자와로 향했다. 호그와트 마법 학교로의 여행은 여기서 부터 시작이다.
미지의 장소는 3미터 높이의 시꺼먼 철판으로 굳게 닫힌 입구를 보며 과연 이곳이 귀한 문화재가 가득한 그곳이 맞나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타기 위해 킹스 크로스 역 9와 3/4번 승강장인 돌 벽으로 돌진해 들어가는 해리포터와 같은 무모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루마자와의 굳게 닫힌 철문이 열린 순간부터 일상은 뒤로하고 다른 차원의 세계로 순간 이동하는 짜릿한 여행이 시작된다.
이곳은 개인 박물관으로 자바의 조글로 양식 전통주택이었다. 저택의 주인인 산토스(SANTOS) 부부는 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해외로 저렴하게 팔려나간 인도네시아 유물을 고국으로 들여왔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는 문화재를 수집하였다. 그는 박물관을 운영하며 오지탐험 여행을 주관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저렴한 골동품이 가치를 알아보는 이에겐 귀중품이 된다. 나는 그의 안목을 느껴보기 위해서 사진 찍는 것도 포기하고 투어 내내 산토스 박물관 관장 옆에 바짝 붙어 서서 설명에 집중했다. 그는 문화재의 역사와 가치 뿐만 아니라 발견한 당시의 상황까지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해맑은 표정으로 신이나 설명하는 산토스 관장을 보고 있으니 그는 단순한 골동품이 수집가가 아니라 인도네시아 문화재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장인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벽에 걸려 있는 바띡 앞에 서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 바띡 중간 중간에 왜 구멍이 나있는지 물어왔다. 마치 담배 불씨가 떨어져서 구멍이 난 듯 한 곳을 덧천으로 덧대어 놓았다. 대대로 제사에 사용되는 이 바띡은 천의 일부를 불에 태워 향을 피워 올림으로써 신과 교감하는데 사용되었다. 산토스 관장은 서슴지 않고 손으로 만져 보라고 권한다. 바띡은 본래가 사람의 손을 타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계속 만져주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제사장이 신께 올렸던 바띡을 보고 만질 수 있는 것. 이것이 루마자와의 매력이다. 이외에도 전쟁용 창과 방패, 조각상, 그림, 가면 등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특히 중국과 인도에서 건너 온 직물이 어떻게 인도네시아 바띡 문양에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쯤 되면 루마자와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장소인지 궁금해서 안달이 날 법하다. 하지만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상세히 설명하기 보다는 직접 체험하기를 권한다. 어차피 눈으로 보기 전에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이기 때문이다. 구체적 묘사나 사진으로 시공간 여행의 감동을 빼앗아 버리는 스포일러가 되고 싶지 않다. 다행히 한인니문화연구원에서 내년 초에 루마자와 투어를 다시 한 번 준비한다고 하니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직접 체험해 보시길 희망한다.
맛보기로 한 가지만 누설하자면, 루마자와를 호그와트 마법 학교에 비유한 이유가 있다. 단순히 문화재가 많아서가 아니다. 미로처럼 복잡한 통로에 끝없이 이어지는 42개의 방. 대중에게 공개되는 방은 오로지 24개 뿐. 이 또한 하루 만에 다 볼 수도 없으며 방마다 서로 다른 콘셉트로 각기 다른 지역의 유물을 전시해 두니 방을 옮길 때마다 시공간을 오가는 체험이 된다.
파푸아 지역의 아스맛 부족 방안에는 파푸아 족이 실제로 사용했던 창과 방패가 진열되어 있었다. 한 부족 전체가 사용했을 규모와 위압감이 상당하다. 루마자와를 지키는 호위 부대가 매서운 눈초리로 방문객을 검문하듯 서 있으니, 까딱 잘못 했다간 쫓겨날까 싶어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갔다. 이 정도면 호그와트 마법 학교처럼 신비롭다 할 수 있지 않은가?
자카르타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는 한인 커뮤니티가 크지 않아서 한인니문화연구원에서 제공하는 문화탐방의 기회를 접하기 매우 어렵다. 첫 문화탐방의 경험을 제공해주신 한인니문화연구원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