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회 한*인니문화연구원 열린 강좌
시인 최준과 함께하는 문학으로 만나는 인도네시아
지긋지긋하게 내리던 비가 어느새 잠잠해 지기 시작한 4월의 어느 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부랴부랴 자카르타로 향했다.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가장 소홀했던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위해서였다.
아이를 키우랴 살림하랴 인도네시아에 적응하랴,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라곤 ‘밤잠’뿐이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억울하고 우울해져 탈출구를 찾던 중이었다. 그리고 발견한 열린 강좌.
오늘은 나도 여고시절 꿈이었던 문학인으로서의 시간을 보내보리라. 자카르타가 아무리 밀려도 난 오늘 꼭 가리라.
1984년,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화려하게 등단해 천재시인으로 불렸던 최준 시인. 한국 문단에서 홀연히 사라졌던 인도네시아에서의 5년 생활을 바탕으로 [쁠라우안 라뚜 해안의 고양이] 라는 시집으로 내며 우리에게 친근해진 시인이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남과 같을 수 없다.’로 시작된 그의 강의는 끝나는 순간까지 나를 그 먼 옛날 여고시절 나의 교실, 내 자리에 앉혀두었다.
우리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안에 존재해도 각자의 안으로 들어가보면 각기 다른 생각, 다른 감동을 받게 된다. 그것은 결국 ‘우리’의 정서란 없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라는 ‘우리의 정서’가 아닌 개인별 다른 정서, 바로 ‘나’의 정서가 있을 뿐인 것이다.
‘나’의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은 언어이며, 정서의 표현에 있어 잘 쓰고 못쓰고를 판단하는 기준이 바로 ‘내’ 정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글을 평가할 때면 읽는 사람은 그 누군가의 정서가 아닌 바로 읽은 자의 정서가 맞아야 잘 썼다고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호불호를 만드는 것이다.
수많은 문학인들이 등단을 위해 수없이 많은 고통의 시간들을 보낸다. ‘등단’이라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는 한 편으로는 예비 문학생도들의 꿈으로,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의 세력과 돈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기도 하다.
먼저 ‘머리의 눈’만 뜬 지식인들은 ‘지성’은 부족한 상태로 양손에 빵과 돌을 들고 남을 어르기도 협박을 하기도 한다. 등단이 목표인 예비 문학생도들은 그런 지식인들에게 때로는 힘으로 때로는 돈으로 휘둘리며 몇 번의 눈물을 흘려야 하는 고난을 겪기도 한다.
가슴에 눈을 뜬 지성인이 되자. 돌을 내려놓고 빵만 들자. 문학을 통해 우리는 층을 나누지 말고 늘 서로를 보듬는 교집합이 되자.
인도네시아는 미국과 같은 문명 국가는 아니지만 우리보다 더 무궁 무진한 문화적 자산을 가진 문화 국가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인도네시아를 정서적으로 봐야 할 것이다.
돌은 내려놓고 타인을 위한 양식이 될 수 있는 문학을 하기에 얼마나 아름다운 조건을 가진 나라인가. 문학은 진실과 사실이 꼭 바탕이 되어야 하지는 않는다. 작가의 진실성과 사실성을 필요로 할 뿐이다. 내 정서가 써 낼 수 있는 진실성과 사실성은 무엇 인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실성과 사실성을 받아드릴 수 있도록 ‘나’의 지성으로 바라보고, 서로를 보듬는 정서로 글을 쓰자.
인도네시아는 우리에게 수많은 문화적 자산을 통해 나의 지성을 바탕으로 한 타인을 공감시킬 수 있는 글을 쓰게 해 줄 것이다.
최준 시인은
1963년 강원도 정선 출생, 84년 ‘월간문학’ 신인상 시 당선, 90년 ‘문학사상’ 신인상, 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집 [개], [나 없는 세상에 던진다], 우리에게는 인도네시아를 배경으로 한 시집 [쁠라부안라뚜 해안의 고양이]로 잘 알려져 있다.
200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을 수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