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현실로 되다
이정수(JIKS 10)
꿈을 실현해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요즘 사람들에게 꿈이라는 개념을 물어보면 대부분 직업의 선택을 생각합니다. 초등학생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많은 아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말합니다. 저 역시 이들과 같이 선생님이라는 꿈을 오랫동안 꿈꿔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직접 누구를 가르쳐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단지 아는 직업이 다양하지 않아서, 선생님이라는 일반적인 직업을 선택해 왔다고 저의 꿈을 의심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 친구와 인도네시아 현지학교에서 봉사활동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저는 이것이 저의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울퉁불퉁한 길, 좁은 운동장(운동장이라기보다는 들판이었습니다), 타일이 뜯어진 바닥,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벽, 이것이 제가 가르친 학교의 ‘겉’모습이었습니다. 제가 ‘겉’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이유는 표면상으로는 초라하였지만 인도네시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내면의 모습은 매우 달랐기 때문입니다. 처음 제가 이 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친구의 권유 덕분 이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부모님이 허락을 해줬던 것은 아닙니다. 공부에 방해도 되고 제가 이 학교만 갔다 오면 지치는 약한 체력을 가진 것을 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학교에 면접을 보고 온 첫날부터 너무나 큰 기대에 차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도 저를 못 말리고 제가 원하던 봉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긴장한 탓에 밤에 4학년 수학책을 붙들면서 자기도 하였습니다.
첫날, 제가 학교로 들어섰을 때, 학교 아이들은 저를 외계인 보듯이 쳐다봤습니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제가 민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친구와 교무실로 갔습니다. 그날 교무실로 가면서 복도가 어찌나 길게 느껴졌던지……. 저는 빨리 교실에 들어가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들 앞에서 자신 있게 수업할 수 있는 성격이 못 됐기 때문에 너무나도 긴장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제 친구는 전혀 긴장하는 기색 없이 매우 간단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긴장감을 풀려고 노력하면서 낯선 나라에 발을 디디는 느낌으로 교실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아이들은 외국인 교사는 처음이고 처음 보는 얼굴이라, 모두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자리에 앉아 제가 말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저는 교단에 서는 경험이 없는 터라, 제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생각보다는 제가 미리 사전을 찾아가면서 적어놓은 너무나도 형식적이고 딱딱한 글을 인도네시아어로 읽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리고 낯선 저를 이해하고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밀려오는 감동에 힘입어 더 자신 있게 말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어느 순간 저는 당당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베로니카(한국 이름은 아이들이 부르는데 불편할까봐 저의 세례명을 사용했습니다.)라는 이름으로 아이들 앞에 서면서 저는 교사라는 제 꿈을 찾은 듯이 기뻤습니다.
저는 이렇게 계속 학교를 매주 토요일마다 가게 되었습니다. 한국학교의 교재를 이용해서 4학년 수학교사로 수업을 했습니다. 그 학교는 5학년 때부터 수학이라는 과목을 배웠기 때문에 아이들은 교재 자체가 없는데다가, 수학이라는 과목대신 항상 그 시간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저로서는 매우 속상했습니다. 물론 학습과정이 우리나라보다 늦다고 비난을 하거나 동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가난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우울했습니다. 수학을 가르치면서 저는 저도 모르게 아이들과 친해졌습니다. 제 자신이 아이들과 친해진 모습을 묘사해 보자면, 수업할 때는 엄격한데 여타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호의도 베풀고 친절하게 놀아도 주면서 친해졌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제 수업방식을 처음에는 매우 어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수학을 처음 배우는 거라, 아예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아이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몇몇 아이들은 부모님들에 의해 기본적인 개념을 이미 배워 알고 있어서 수업을 진행하는데 많이 힘들거나, 답답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루는 복잡한 계산의 곱셈, 나눗셈에 대한 쪽지 시험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시간을 쪼개어서 만든 시험지인데다가 제가 몇 달 동안 가르친 내용을 시험하는지라 보람을 느끼며 시험지를 아이들에게 나눠줬는데 아이들은 시험을 처음 보는 것인지(이 학교는 정식시험을 6학년 때만 보고 있었습니다.) 매우 당황스러운 눈치였습니다. 아이들의 주변을 얼쩡거리면서 보니 제대로 공부를 해온 아이들은 아주 소수 일뿐, 개념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수 도록 했습니다. 저는 절망과 함께 아이들을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이 날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실망스러웠던 이유는 아이들의 태도였습니다. 어떤 아이는 제가 뻔히 앞에서 지켜보고 있는데도, 옆에 아이의 시험지를 베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아이는 나중에 보니 시험지를 아예 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왜 그랬냐고 물으니 ‘너무 몰라서 안 냈다’는 어이없는 대답을 듣기도 했습니다. 제가 교사로서 처음내본 시험이기도 했고 아이들의 성의 없는 태도에 실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의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날은 제가 아이들과 더욱더 친해지고자 하는 마음에, 수학을 조금만 공부하고 난 후 학교 바로 앞에 있는 들판으로 나가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인도네시아 아이들과 의사소통이 완벽히 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처음에는 피구, 술래잡기, 수건돌리기 게임 등, 여러 가지 게임들을 같이 즐겨보려고 알려 줬습니다. 하지만 저의 노력에 돌아오는 것은 질서 없고 무슨 게임을 하고 있는지조차 이해 못하는 아이들의 어리둥절한 표정뿐이었습니다. 피구는 땅에다 하는 공치기로 바뀌었고, 술래잡기는 릴레이가 되었고, 수건돌리기는 아이들이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는 희한한 게임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시간을 통해 아이들과 친해진 점에는 기뻤지만, 제가 얼마나 인도네시아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부족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껴주려면, 진심으로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세계와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려면 그 나라의 언어를 기본으로 하여야 하겠지요?
저는 이렇게 매주 토요일을 아이들과 추억을 만들어 가며 지냈습니다. 가끔은 자기 꿈에 대한 생각을 해오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수업 시간에는 수학과 관련된 영어단어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아이들에게 폭넓은 지식을 안겨주길 바랬습니다. 비록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은 한계가 있었지만, 저는 아이들과의 이런 만남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자신들의 할 일이 얼마나 멀고도 많은지 또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할 수 있고 다양한 꿈을 실현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고 싶어서 항상 노력했습니다.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미리 말하지 않고 그 날 떠난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더니 슬퍼하면서 저의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연락하기를 바랐습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저는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선물을 하나씩 주었고,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도 했습니다. 6개월의 봉사활동 동안 너무 많이 정이 든 아이들……. 떠나고서도 저는 이 아이들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지금도 가끔 이 아이들과 연락을 하면서 아이들의 어려운 점을 들어주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전화통화를 하면 의사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깊은 얘기는 못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저를 끝까지 이해해주면서 자주 연락을 하곤 합니다. 그럴 때면 저는 아이들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제가 아이들에게 참 많은 것을 배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인도네시아 아이들과 소박한 인도네시아의 학교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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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번 글짓기 대회에 참가한 이정수입니다. 저는 이번 대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인도네시아 학교의 이미지를 알려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교사로서 6개월 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저는 인도네시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제 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교사라는 소박한 꿈을 가진 저는 이 나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제가 선택한 꿈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아직 덜 개발된 국가이지만, 저는 이 나라가 아주 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또랑또랑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입가에 웃음이 지워지지 않고 항상 밝고 친절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마다의 부모들을 위해 큰 사람이 되려는 큰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단지 이 아이들이 사는 환경이 나빠서 덜 배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게으르거나 지능이 떨어지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더 많이 가르쳐주고 싶고,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은 저의 마음으로써 저는 여러분들도 인도네시아의 아이들을 가능성 있는 아이들로 바라봐 주시기 바랍니다. 가난하다는 불운 때문에 좌절하기 보다는 그들의 환경 속에서 웃음을 유지해 나가는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세계의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학생들에게 저는 외국인으로서 단지 신기한 사람으로 보였을 뿐이었지만, 나중에는 아이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제 친구이자, 저의 인생의 가이드로 남을 것입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다시 한 번 저에게 아름다운 추억과 소중한 경험을 전해준 저의 학생들에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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