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소중한 추억들
강성윤(인턴,대학생)
이곳은 대한민국 서울, 지금은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이란 계절이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내 벗들은 겨울이 어떨지 상상도 못하겠지?그 곳은 열대기후이기 때문에……. 거리에는 함박눈이 나폴대고, 놀이터의 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비가 오면 좋다고 거리로 나와 뛰어 놀던 인도네 시아어린이들이 떠오른다. 한국에 돌아 온지 만 4개월이 되었지만, 인도네시아에서의 6개월은 아직 아니, 잊을 수가 없다. 차가운 계절과 흡사하게도 하루하루가 경쟁인 이곳에서 마음의 여유를 느끼지 못하게 된 까닭일까?
결국 20대 중반이 되어서도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해 자기주관이 뚜렷하지 못한 나를 탓하게 된다. 2014년을 마무리하며, 서서히 조각나고 있는 나의 뜨거웠던 인도네시아의 생활을 되새기며 글을 적는다. 인도네시아에 가게된 것은 올해 초, 대학시절 마무리할 즈음 정부지원 인턴으로 선발됐을 때였다. 사실 해외산림자원개발 지원 국가와 기업체가 본인 의지대로 최종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에 75%는 의지, 25%는 운이 좋았다. 여기서 운이 좋았다고 하는 것은 6개월간 마주쳤던 모든 사람들이 내겐 행운이었고 좋은 인연이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자신감은 항상 넘쳤으나 지난 25년동안 해외경험이라곤 한 번도 없는 내게, 올해 초 인도네시아 해외인턴 합격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출국이 약 2주도 안남은 기간이어서 부랴부랴 준비해서 날아간 인도네시아는 한 마디로 두려움 그 자체였다. 피부색부터 언어는 물론 말투, 억양도 강한 이 나라에 도착하여 ‘적응’이라는 단어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2달이 훌쩍 지나갔다. 물론, 자카르타에서 일이 아닌 일상생활만 했다면 더 빨리 적응했을 수도 있겠지만, 엄연히 업무 일을 하기 위해 갔기 때문에 우선순위의 0순위는 언제나 회사였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정신차려보니 약 2~3달이 그렇게 바쁘게 훌쩍 지나갔다. 이제 좀 숨통이 트이고 출퇴근 시간에 인도네시아 인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많은 인니 거주 한국인들이 말하듯 이 곳(인도네시아)은 항상 되는 것도 없고, 항상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였다. 그게 대부분의 한국인이 정의하는 이 나라 모습이었다. 사실 외국인들의 다른 사상들에 대해 처음에는 왜 그럴까? 이해하려 다가갔으나 이해될 리가 없었고, 짧은 6개월이지만 느낀 점이라면 ‘그냥 다른 사람들이구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주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먼저 다가가는 것이 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는 주로 전반적인 인도네시아내의 사업계획을 다루는 보조업무를 맡았었는데 현지인들의 업무처리 방식이나 인니 정부자료까지, 사회생활을 처음 경험해보는 나에겐 너무나 가혹한 업무환경이었다. 처음엔 그렇게 느꼈지만 요즘 들어 어디나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차차 몸이 적응되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잉여시간이 남게 되었고, 그 시간을 잘 활용해보고 싶었다. 그 전에도 주말이면 동료 형과 함께 꾸준히 관광지와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그 나라의 문화와 정서를 알아갈 즈음 회사 상사님께서 ‘이 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그 것을 하려고 노력해라.’는 소중한 말씀은 나로 하여금 또 다른 무언가를 찾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당시 생각으론 이 나라에서 생활하고 일하러 왔으니 언어는 당장 늘려야겠고, 학원을 다닐 시간과 돈은 넉넉지 않고, 해서 주말만이라도 언어교류를 할 수 있는 현지인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된 한인커뮤니티 찾기, 한인잡지와 각 종 사이트, 전화를 돌려가며 컨펌이 된 곳이 바로 ‘한.인니문화연구원’이었다. 이곳의 원장님께서는 흔쾌히 ‘한국어 교육봉사’라는 타이틀로 장소(교실)와 연구원의 현지인 직원을 소개해주셨다. 원장님께서도 중단된 한국어에 대해 교육을 다시 시키고 싶으셨다고... 전문적이진 않지만 이것도 재능이라면 내가 가진 것을 없는 사람에게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원장님께서 막상 길은 터주셨지만, 내가 남에게 알기 쉽게 한글을 가르쳐준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다. 전공이 한국어도 아니고, 교원자격증도 없을뿐더러 연구원에서는 처음으로 현지인 대상 한국어 강의를 하는 거라 일러주시니, 여간 걱정이 되는게 아니었다. 회사 업무와 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지만 내가 먼저 제안 부탁을 했기에 책임감 있게 마무리하는 모습까지 보여드리고 싶었다. 이런 총체적으로 부족한 점들이 오히려 내겐 꼼꼼하고 부지런하게 준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줬다. 대학별 어학원사이트부터 정부,기관, 교육 사이트, 한국어교원 개인, 책, 사전 등 정말 다양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커리큘럼부터 강의 방법까지 알아봤다. 그와 더불어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인도네시아어도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언어교류가 시작이 됐고 결과적으로 끝날 땐 12명으로 끝났다.(처음엔 2명으로 시작했던 걸 생각하면 적지 않은 성공이라 자평했다.)
본인이 잘해서라기보다 원장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현지인들의 한국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고, 따라서 책임감과 부담감으로 더욱 준비시간이 길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한글 자모와 구성, 발음부터 인사말과 자기소개하기, 사무실과 전화상에서 쓰이는 한국어, 테마별 단어와 간단한 한국어 문장 만들기까지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실용적인 생활한국어와 문화를 전파하는데 목적을 두고 진행했다.
나의 부족한 실력과 서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매 시간 정말 감사하다는 표현을 해왔고, 그 수업시간 마다 그간(25년간) 느껴보지 못했던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첫 강의 후 수줍게 다가와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어서인지, 노력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보람이었는지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정말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4시간이 넘는 강의로 몸과 정신은 하얗게 불탔지만 그 감정은 벅차올랐다. 원장님께서는 이런 나를 보고 마치 예전에 당신께서 첫 강의를 하실 때가 떠오른다고 하셨다.
그 말씀 역시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언어 외에도 K-Pop 동영상과 노래를 Waktu Istirahat에 자주 틀어주었고, 내가 느낀 인도네시아인과 다른 한국인의 특성들을 하나씩 설명해 주었다. 물론 좋은 특성들만 골라서... 그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신기해했다.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신기함과 다를 바 없어보였다. 가끔은 한국 사발면도 맛 보여주고, 한국에서 가져온 동전들과 열쇠고리도 선물해주었다. 그들 역시 인도네시아 식 음식과 과자를 선보여 주었고 문화를 알려주었다.
하루는 강의 후 Taman mini indonesia indah로 소풍을 갔었다. 그곳에서 그들이 즐기는 방식과 지역 별 가옥의 특징, 동식물 등을 설명 받을 수 있었다.
이 전에 동료 형과 단 둘이 탐방한 적이 있었는데, 현지인과 와보니 확실히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는 만큼 그들은 더 크게 다가와 주었고, 나는 그 감사함에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주었는데 오히려 더 크게 고마워했다. 평소 당연하게 생각하고 원할 때 걸림돌 없이 누릴 수 있었던 사소한 것들이, 누군가에겐 아닐 수도, 단지 희망일 뿐일 수도 있겠다, 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마지막 수업에는 바띡 옷과 바띡 옷감, 메단 지역 가옥의 특색이 잘 살아난 열쇠고리, 학생들끼리 편지를 써서 모은 스크랩북, 케이크와 르바란 명절 쿠키(추석의 송편, 설날의 떡국과 비슷하다 한다.) 등 역시 많은 선물을 받았다.
교류를 통해 벅차오르는 감정을 제외하고서도 무엇보다 이 시간을 통해서 현지인들이 자주 사용하나 사전 등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일반적인 슬랭의 등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과 그를 통해 조금 더 귀를 열 수 있었던 점이 6개월 기간 동안 크게 도움이 됐다.(대학시절 캠퍼스 내 외국인들과 왜 친해질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게 밀려왔다.)
한국의 문화에 대해 열광하는 그들을 보며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도 고취할 수 있었고, 또한 한국에서 누릴 수 있었던 사소한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함과 한국에서처럼 ‘빨리빨리’ 가 아닌, 차분한 마음으로 일을 이뤄낼 수 있다는 점, 하지만 막상 필요할 때 바로 얻을 수 없는 점 때문에 항상 미리 준비하게 되는 자세, 그리고 세상은 넓고 우리와 다른 사람은 정말 많다는 점 등을 배울 수 있었고, 이로써 스스로의 가치관이 굉장히 넓어졌다고 느낀다.(유럽과 북미 서양인들의 마인드는 또 어떻게 다를까, 상대적으로 또 다른 그들 문화의 나라에서의 내 생활은 어떻게 변할까. 더욱 많이 느끼고 깨닫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현재도 내게 배웠던 학생들 중 몇몇은 페이스 북과 카카오톡 메신저를 이용하여 연락이 오곤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답장도 못하고 지내고는 있지만…….올해가 가기 전에 꼭 모두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겠다고 다짐한다.
6개월간 사회생활과 회사생활에 많이 부족함에도, 잘 가르쳐주시고 챙겨주셨던 현지의 사장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과 한.인니문화연구원 원장님, 그리고 학생들 모두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또 타지에서 국위선양을 하시는 모든 선배님들께 존경심을 느낀다. (인도네시아는 꿈의 땅임과 동시에 결코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되는 신흥시장임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글을 적으면서 소중한 추억을 다시 재조립한 것 같다. 정말 많은 분들과의 교류와 도움을 받았단 것을 새삼 깨닫는다.
보다 여유롭고 순박하다고 느꼈던 현지인과, 내가 알고 지냈던 많은 사람들이 그립다. 낮부터 해가 지고 오들오들 추운 이 한국의 겨울 날씨에 인도네시아에서 멋스럽게도 곧게 자란 키 큰 나무와 따사롭다 못해 뜨거운 햇살이 새삼 또 그리워진다.
변변치 못한 글 솜씨에 장려상을 안겨주신 심사단 여러분께 기쁨으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Win-Win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주셨던 한·인니문화연구원 원장님께 다시 한 번 큰 감사 말씀드립니다. 수상으로 큰 격려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새 해를 맞으며 의지와 각오를 새로이 다질 수 있게 됐습니다. 비록 한국에 있어서, 성대한 제 5회 공모전 시상식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아쉬움을 달래며 마음으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모든 재 인니 한인 분들의 행복한 연말·연초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