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회 한*인니문화연구원 제 33회 열린강좌 (2015년 2월 28일)
맛없는 커피도 함께 마시면 최고의 커피
김 선 정(한경리크루트 취재팀 기자)
비싼 와인을 마실 때는 어느 나라 와인인지 포도품종은 무엇인지 따지게 되지만, 언제 어디서나 쉽게 사먹는 커피는 아이스인지 시럽을 넣는지만 중요할 뿐이다. 다양한 특징을 지닌 와인처럼 커피도 생산되는 나라, 지역, 농장, 재배지의 고도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르다. 아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커피 생산지인 인도네시아에서는 커피의 나라답게 다양한 커피품종이 있지만, 현지인들은 침출식 커피를 즐겨 마시고 한국인들도 사먹는 커피에만 익숙할 뿐 직접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한*인니문화연구원의 주최로 열린 ‘이진호 마스터와 함께 하는 인도네시아 커피 즐기기’ 강좌는 커피의 나라에 살면서도 커피에 대해 무지했던 사람들에게 좋은 배움의 자리가 되었다. 자신의 기호에 따라 원두를 선택하고 내려 마시는 방식을 배우기 위해 자카르타 전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열띤 강의가 시작되었다.
수업에 대한 긴장감 때문인지 설렘 때문인지 다소 들뜬 분위기의 강의실. 5인 1조라는 말에 수를 맞춰 둘러앉아 각자 가져온 준비물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어느새 수업이 시작되었다. 위아래로 까만색을 옷을 맞춰 입은 훈남 선생님께서 단발머리를 흩날리며 등장하자 강의실에는 수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이진호 마스터님은 인기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서 수제커피의 달인으로 나오셨던 분이라고 하니 귀가 더 쫑긋해졌다.
선생님께서는 핸드 드립 추출법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인스턴트커피에 대한 진실과 인도네시아 커피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다. 커피의 2대 원종은 일명 자판기커피라고 불리는 인스턴트커피의 원료인 로브스타종과 원두커피를 만드는 아라비카종이라고 한다. 로브스타종으로 만든 인스턴트커피는 카페인 함량이 높고, 화학적 가공을 거쳐 생산된 설탕과 물과 기름으로 만든 프리마의 범벅이라는 말에 그동안 마셔왔던 수많은 인스턴트커피가 떠올랐다.
야근이면 책상에 쌓여있는 수많은 종이컵과 함께했던 인스턴트커피의 실체에 놀랄 틈도 없이 인도네시아 지도를 보며 인니 커피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다. 바루 다땅(baru datang)이라 인니 섬 이름도 아직 다 외우지 못했는데, 섬마다 생산되는 대표 커피품종 이름까지 나오니 머리는 이미 과부하가 걸렸다. 외우는 것은 포기하고 귀는 선생님을 향해 손은 종이를 향해 받아 적느라 바빴다. 술라웨시의 또라자, 수마트라의 아체가요, 만델링, 린통, 자바의 올드자바, 발리, 플로레스 그리고 빠뿌아까지. 인도네시아의 70% 지역에서 커피를 생산한다니 역시 커피의 나라다웠다.(브라질, 베트남에 이어 세 번째 커피 생산국이자 수출국)
1, 2차 물 투입이 커피 맛과 질 80% 결정해
짧지만 유익했던 커피 이론 강의가 끝나고, 선생님께서 직접 로스팅 해온 각 지역의 커피들을 핸드 드립 추출법으로 시음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라인딩 된 원두가 담긴 드립퍼에 물을 투입하니 코끝을 간질이는 커피향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커피향 못지않게 커피맛도 일품이었다. 여러 명이 나눠마시느라 한 두 모금 밖에 마실 수 없는 아쉬움을 뒤고 하고 이제 자신의 커피를 추출할 시간. 맛있는 커피를 더 마시고 싶은 마음에 손이 바빠졌다.
각 조마다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커피품종을 배분받아 핸드 드립을 시작했다. 하지만 필터를 접어 드립퍼에 넣은 첫 단계부터 우왕좌왕, ‘원두 넣고 뜨거운 물 투입하면 끝’이라는 생각이 여지없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물의 온도, 물 투입하는 방법, 1차 물 투입 후 뜸들이기, 뜸 들이는 시간, 2차 물 투입하기, 3~5차 물 투입으로 농도 맞추기 등 과정 과정마다 정확함과 신속함, 그리고 정성이 필요했다.
핸드 드립하는 여러 과정 중에 물의 온도가 맞지 않거나 뜸 들이는 시간 30초를 지키지 않거나 물 투입시기를 맞추지 못하면 커피에서 잡맛, 물맛, 떫은맛이 나게 된다고 한다. 한 마디로 맛없는 커피가 추출되는 것이다. 이에 어느 하나의 과정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고 있으니 어쩌면 인생도 커피 추출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어느 한 과정이라도 방심하거나 소홀하게 되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뜸 들이는 시간 30초를 지키지 못하면 맛없는 커피가 되는 것처럼 인생도 작은 실수에 결과가 많이 어긋나곤 하기 때문이다.
내가 추출한 커피는 솔직히 맛이 없었다. 아마 어느 과정 중에서 실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해냈다는 뿌듯함에 맛있게 조원들과 나눠마셨다. 인생도 때론 실수투성이고 결과가 예상과 다를 때도 많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다. 맛없는 커피도 여러 사람과 나눠 마시면 맛있는 것처럼 실수하는 인생도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면 살만하니까.
연령 경력 초월해 커피로 하나 되는 시간
수업 말미에는 서로 추출한 커피에 대한 평가와 웃음소리로 강의실이 시끌벅적해졌다. 한*인니문화연구원에서 센스 있게 준비한 샌드위치, 김밥과 함께 마시니 실수투성이의 커피도 꿀맛이었다. 사실 선생님께서 추출해주신 맛있는 커피가 살짝 생각나기도 했다. 미즈모렌(SCBD Lot8. Foundary 2층)이라는 카페에 가면 이진호 마스터님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하니 그곳에서 아쉬움을 달래기로 하고.
열린 강좌를 통해서 내 손으로 나만의 커피를 만든 것도 좋았지만, 나이도 제각각 인니에서 산 이력 및 경력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커피로 하나 되는 느낌이 무엇보다 좋았다. 수업 참가자 중 가장 어릴 것이라고 짐작되어 이야기하기 조심스럽지만, 자신의 커피에 몰두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행복해 보였는지 모른다. 이러한 시간을 마련해준 한·인니문화연구원 관계자 분들과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나요?
지금도 한 눈을 감은 채
커피 한잔에 담긴 흔들리는 그리움으로 젖어 있나요.
마치 첫 사랑에 취한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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