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니문화연구원 266회~268회 문화탐방기
같은 꿈을 다시 꾸고 싶다.
염재민(Sekolah Pelita Harapan 8학년)
엄마가 족자카르타 여행을 제안했을 때 별로 흥미가 없었다. 처음 뵙는 어른들과 같이 가는데다가 새벽 4시에 출발이라니. 거의 반강제로 따라가게 되었다. 당일 아침, 비몽사몽 일어나 겨우 공항으로 갔다. 연구원에서 나누어주는 팸플릿을 읽으면서 “또 공부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기대도 되었다. 나누어 주는 명찰을 받으면서 소속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족자에 도착해서 버스에서 고은 시인의 ‘낯선 곳’이라는 시를 들으면서 떠나기 전과는 달리 마음이 설레었다. 이것이 ‘여행이 주는 즐거움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낯설음이 주는 열정을 안고 돌아가는 탐방이 되었으면 합니다.”라는 원장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괜히 가슴이 뛰었다.
전통식으로 꾸며진 그림같은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므라삐 화산(Gunung Merapi)으로 갔다. 거대한 폭발이 많이 일어난 화산이라고 해서 겁나기도 했지만, 덜컹거리는 지프차에 타면서,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높디높은 므라삐산, 파란 하늘, 나무, 바람 등 대자연의 웅장함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므라삐박물관에서 화산폭발로 파괴된 집을 보았다. 전시는 엉성했지만 부서진 텔레비전, 우그러진 휴대폰, 화성에서 온 것 같은 자전거와 그릇들이 많아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곳의 지도가 바뀌었다고 원장님께서 설명해 주셨다. 2010년 폭발로 폐허가 된지 거의 4년 만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무도 많이 자랐고 사람들은 슬픔을 잊고 길을 닦고 이렇게 재건에 힘쓰고 있었다. 탐방 회원 어느 분이 “모든 것은 지나간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오래도록 기억에 남으면서 나도 철학자가 된 것 같았다.
족자와 솔로 왕궁의 오래된 문화와 역사가 전시되어 있는 울렌센따루 박물관(Museum Ullen Sentallu)에 갔다. 바틱 전시관과 옛날 왕족들의 이야기와 그림들을 보면서 ‘왕궁이 문화의 보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바틱은 “자바의 영혼”이라는 책 제목도 떠올랐다. 우리나라는 왜 왕궁(왕가)의 전통을 이어가지 않았나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박물관 옆에 있는 유럽식으로 꾸며진 찻집에서 품위 있게 차도 마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 탐방지인 인도양 빠랑뜨리띠스 (Parangtritis)해변으로 갔다. 마차를 타고 해변을 달릴 계획이었지만 비가 와서 안타까움을 느끼며 발을 돌렸다. 처음 보는 인도양, 긴 해안선과 거친 파도. 팸플릿에 쓰인 대로 자꾸만 뒤돌아보게 하는 바다였다.
내일은 왕궁에 간다고 한다. 100년 된 호텔에서 잠을 청하며 팸플릿에 쓰여 있는 시 구절처럼 나도 왕족이 되어 바틱 입고 가믈란(Gamelan)을 즐기는 장면을 상상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역사적인 호텔도 둘러보고 베짝을 타고 왕궁에 갔다. 신기한 이야기들과 건물들, 사진들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왕들의 사진들과 그들이 사용했던 물건이 많았다. 가네샤 상도 있었는데. 코를 세 번 만진 뒤 같은 손으로 머리를 세 번 만지면 똑똑해진다고 해서 만지면서 옛사람들은 참 유머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궁에서 우연이라도 하멩꾸부오노(Hamengkubuwono) 10대왕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왕이 계시는 건물을 몇 번이고 뒤돌아보았다. 나는 옛날의 왕족처럼 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베짝을 타고 왕들의 별궁이라는 물의 궁전(Taman Sari)에갔다. 가는 길에 족자사람들이 온화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어서 피곤함이 날아갔다. 물의 궁전에서는 신비로운 설화와 색다른 모양의 건축물도 눈에 뜨였다. 신기한 문양들과 특이한 모양의 문들이 많았다. 지하 기도실(Masjid Bawah Tanah Sumur Gumulung)에서, 그리스를 연상시키는 기도실 앞의 부서진 문 쪽에서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좋아하면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다음 탐방지인 아판디 박물관(Museum Affandi)에 갔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왜 그가 ‘인도네시아의 고흐’라고 불리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작품들과 대가 아판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깊은 감동을 느꼈다. 서양의 피카소나 고흐보다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도 있었다.
라라종그랑의전설이담겨있는힌두사원쁘람바란(Candi Prambanan)에 갔다. 재건된 총 18개의 탑, 그 중 3개의 탑은 시바 신, 브라만 신, 그리고 비슈누 신을 상징한다고 한다. 탑 앞에 그 신들이 타고 다녔던 승물을 모셔놓은 탑이 있었고 나머지는 예물을 바치는 탑이었다. 사원을 둘러보고 부조와 동물들을 하나하나 사진도 찍으며 신전이 듣던 것 보다 웅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람바난 사원 군 중 몇 사원(Candi Sewu, Candi Plaosan)도 탐방을 했는데 그 신전들도 생각보다 컸다.
물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프람바난에 있는 야외공연장에 라마야나 공연을 보러 갔다. 느리면서 아름다운 움직임과 잔잔한 전통 음악이 조화로움을 뽐내며 관객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다. 공연이 끝난 뒤, 아침 일찍 보로부두르를 보기 위해 보로부두르 정원에 위치한 마노하라 호텔로 향했다.
마지막 날, 5시30분에 불교사원 보로부두르(Candi Borobudur)로 향했다. 사원 안에 들어가기도 전, 전경만 보고도 보로부두르 사원은 그 웅장함이 나를 압도하는 것 같았다. 1460면의 아주 많은 부조를 보면서, 73개의 스투파(stupa)를 관찰하면서 설명을 들었다. ‘정말 인간이 만들었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스쳐갔다. 주로 부처님 일대기와 전생, 인과응보, 불교설화, 미륵보살의 가르침에 대한 부조가 새겨져 있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쁘람바란 사원과 보로부두르 사원. 두 개의 다른 종교가 이곳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다양한 인도네시아와 화합을 중시하는 자바 사람들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또 전날 본 프람바난이 여성적이라면 보로부두르는 남성적이었다.
비싼 호텔 아만지오(Hotel Amanjiwo)에 갔다. 연예인들이 많이 방문했었다고 한다. 가장 비싼 방은 하루에 3000불인데 베컴이 숙박했던 방을 구경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어른들은 그곳에서 비싼 커피를 마시며 아주 아쉬워하며 다음 장소로 가기 위해 일어났다.
공항 가는 길, 그 유명한 아얌 수하르띠(Ayam Suharti)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유명세에 맞게 아주 맛있었다. 이곳이 본점이라고 한다. 회원 모두들 바삐야(Bakpia)라는 족자의 유명한 작은 빵도 사고 공항으로 갔다.
이번 여행은 재미있고 보람찬 여행이었다. 특히 여럿이 그것도 모르는 어른들과 같이하는 여행도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탐방 소감을 말할 때 몇 분은 “3일 동안 꿈을 꾼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셨다. 또 어느 분은 “인도네시아의 깊은 문화와 함께하는, 그리고 소중한 여러분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만남”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낯설음이 주는 열정과 만나는 탐방이었다고. 그리고 똑 같은 꿈을 다시 꾸고 싶다고.